2009/04/05 03:13
| 휴지통/SNATCHER/NOVEL
어딘가의 지하 통로. 푸른색 조명만이 주변을 약하게나마 밝혀주고 있었다.
조명이 겨우 도움이 될 정도로 어둑한 그 곳에서 흰 정장을 입은 한 남자가 필사적으로 달리고 있었다. 평소에 운동을 하지 않은듯, 달리기도 발이 자꾸 미끄러져 금방이라도 앞으로 엎어질것만 같고, 숨을 쉴새없이 가쁘게 내쉬는것이 영 시원찮다.
"헉, 헉. 제기랄. 놈이 나를 노리다니…. 말도 안돼! 젠장할!"
말에서 상당히 지친 느낌이 묻어나온다. 허나 달리는 속도만큼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그의 쉴새없는 달리기가 멈추었을때는 더이상 앞으로 갈 곳이 없는 '벽'에 다다랐을때였다.
"훅, 빌…어처먹을 새…끼들! 헉, 헉. 분명 셔터를 올려놨다고 말한주제에! 흐아악!"
달려온 그를 맞이해준 것을 다시 설명하자면 '벽'이 아니라 '문'이다. 싸늘한 분위기로 천장에서 바닥까지 내려 쳐져 단단하게 잠겨져 있는 철장 셔터. 그가 있는 장소는 셔터가 쳐진 건물 안쪽이다. 장치 구조상 셔터는 밖에서만 자물쇠를 풀수 있다. 자물쇠를 풀려면 왔던 길로 되돌아 나가 반대편으로 가서 여는 방법밖에 없다. 즉, 안에서 밖으로는 나갈 수 없는 완벽한 벽이다. 욕설과 절규를 아무리 해봐야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남자는 되돌아갈 낌새가 없다. 표정과 눈동자에 불안의 색이 비친다.
"허, 헉……. 버, 벌써 왔어…?"
자신이 되돌아온 곳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상태로 불안감 가득한 목소리로 자기자신에게 말을 건넨다. 그리고 그런 그에 회답이라도 하듯 또다른 소리가 어두운 공간의 정적을 부수어 왔다.
또박. 또박. 또박.
평소라면 절대로 들리지 않았을 정도로 조용한 발자국 소리. 하지만 긴장된 상태로 되돌아온 곳에 온 신경이 쏠려있던 그 남자에게만은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후, 훅…. 겨,경호원 새끼들…. 헉… 결국 못 막아낸 거야? 돈 헛 줬었군. 하, 하하……."
다가오는 무언가에 남자는 그저 힘이 쭉 빠진 채로 웃을 뿐이다. 발자국 소리는 점점 가까이 들려온다. 남자의 다리는 지금 버티고 있는게 신기할 정도로, 당장이라도 풀릴듯하다. 숨은 어느정도 안정되었으나 쉴새없이 달려왔기에 해소되지 못한 다리의 피로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에 대한 긴장이 합쳐져 나타난 결과일 것이다.
그에게 회답했던 발소리가 그 이상 커지지 않을 무렵, 어둠 속에서 또 다른 인간의 형태가 어두침침한 조명의 빛을 받아 아래로부터 모습을 조금씩 나타내왔다.
전체적인 복장은 검은색. 연미복에 망토. 옷의 안감으로 보이는 부분과 목에 장식된 초커와 허리띠는 실크 재질로 제작된 듯 하며 보라색을 멋지게 물들여 고급스런 느낌이 은은히 풍겨 나오고 있었다. 그 연미복에 이질감을 주는게 있다면 흉부 중앙 쪽에 검은 구멍이 커다랗게 뚫려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과 바로 그 구멍 주변에 갈비 뼈처럼 보이게 만들어진 여섯개의 흰 장식. 그리고 갈비 뼈 장식에 맞춘듯한 느낌의 마치 해골을 거꾸로 뒤집은 헬멧. 어디까지 패여 있는지 알수 없을 칠흑의 느낌이 흉부와 머리뼈의 모든 구멍에서 뿜겨 나오고 있었다.
"제, 젠장!"
남자는 뒤늦게 생각한듯, 안주머니에 넣어둔 자동권총을 빠른 속도로 뽑아 그 골귀(骨鬼)에게 겨누었다. 이 괴물자식은 경호원들이 막아내지도 못했다. 경호원들이 약해빠져서 그런걸까? 아니다. 단순히 운이 나빠서 그런걸까? 그런 것도 아니다. 남자는 이유를 잘 알고 있다. 오직 총을 꺼낸 이유는 유일하게 녀석을 뚫고 가는 법은 저 녀석의 뒤편으로 도망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게 가능할까? 저런 놈을 정면으로 뚫고 가는 것. 불가능하다.
이제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실낱같은 희망이 딱 있다면, 자신의 손으로 녀석을 죽이는 것. 경비원에 문제가 있던 것은 절대 아니지만, 물러터져서 당한 것들이라고 억지로라도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궁지에 몰릴 대로 몰려버린 남자의 머리는 피돌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오, 오지마! 꺼져버려!"
그러나 두개골은 그에 대해 답하지 않는다. 남자가 욕설을 하든 총을 뽑든, 나타날때부터 변함없는 속도로 걸어오고 있었다. 똑같은 템포를 허공에 울리며 다가오는 해골에게 겁을 먹었던 남자의 두려움은 사라질 기세 없이 커지다가, 결국 폭발해버렸다.
"으, 으아아아아악!!!"
몰려버린 자신의 심정을 뱉으라고 하면 그렇게 뱉어낼 것처럼, 무자비한 속도로 자동권총을 난사했다. 탄피가 흩날리며 바닥에 떨어지고 총구에 일순간 터지는 불꽃은 어두침침한 공간을 순간순간 환하게 만들어내었다.
하지만 그렇게 골귀에게 날아간 총알이 그에게 맞게 된 일은 없었다.
약 30cm 앞에서 총알이 어떤 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튕겨나가, 벽과 천장을 이리저리 튕기다 녀석의 등 뒤로 나아간다. 남자는 지금 상황이 꿈을 꾸는게 아님을 안다. 그렇기에 더더욱 오르는 공포심을 방아쇠를 당기는것만으로 풀어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공포심에 맞춰 녀석은 변함없는 속도로 다가간다.
탄피가 나오는 것이 멈췄다, 찰칵거리는 금속음만이 애처롭게 허공에 울려퍼진다. 금속음에 맞추어 골귀의 발도 움직임을 멈추었다. 남자의 코 앞에까지 다가온 것이다.
"히…히이익……."
자신을 조용히 쳐다보는 해골의 가면.
그 패인 눈구멍에서 일순간 잔혹한 보라색 안광을 본 것 같아,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손에서 총을 떨어트렸다. 다시 총을 줍는다 하더라도 탄창 안에는 이제 탄이 없으니 쓸 수 없으리라. 자신의 그나마 실낱같던 희망은 허무하게 지고 말았다.
해골의 망토가 일순간 펄럭이는가 싶더니, 자신의 목을 움켜잡았다. 키만 클뿐 자신과 비슷한 체격인데도 한손으로 가벼이 올려드는 완력은 인간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숨이 거칠어져 제대로 쉴 수 없다. 어떻게 발버둥을 쳐도 벗어나지 못했다.
그제서야 남자는 이자가 진짜 소문의 사신이라는걸 부정하지 못하게 되었다.
수천년동안 악인을 벌해 왔다고 하던 그 존재…!
해골에서 갑자기 환한 기운이 뿜겨졌다. 보랏빛의 불꽃이 두개골의 모든 구멍에서 뿜어 타오른다. 남자는 빛이 거의 없는 이 공간에서 환하게 타오르는 불꽃이 아름답다고 순간 생각하고 말았다.
"…이것은 봉화…."
처음으로 해골이 말을 했다. 그 목소리는 마치 망령에게 억지로 빙의된 시체가 이미 반쯤 썩어버린 성대를 겨우 울리는 것처럼 어눌했다. 하지만 그 지옥에서 막 빠져나온 듯한 목소리는 정말로 사신같은 느낌을 줘, 목이 졸려 괴로운 남자의 뇌 속에 똑똑히 들어왔다.
"…네가 황천으로 가라앉는 신호, 죽음에 취하라……."
말을 마치자마자 반대편 손을 조용히 망토에서 꺼낸다.
자신의 목을 쥔 손과 다르게, 검은 뭉치에서 손가락이 튀어나온 듯한 형태의 손이었다.
해골은 그 손을 신성한 유물을 다루듯 남자의 머리에 조심히 올린다.
"쿠…쿠, 히이익, 살…려줘! 쿨럭!"
무엇을 하려는지 감을 잡은 남자가 겨우 쥐어짠 대답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에 회답하듯 손이 빛나기 시작한다. 손에서 보라색 칼날이 일순간 튀어나와 남자의 머리를 꿰뚫는다.
남자의 몸이 축 늘어진다. 단말마조차 내뱉지 못하고 허무하게 죽어버린 남자. 해골은 그 시체의 머리를 놓지 않고, 머리의 가죽을 벗겨내기 시작한다. 날카로운 도구도 없이 그냥 살을 손으로 잡아뜯어 발라낸다. 주변이 피로 심하게 더러워져도 아랑곳않고 작업을 해낸 그의 손에 남은 것은 머리뼈.
그것만이 사신과 함께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바닥엔 속을 잃어 마치 찢어진 풍선처럼 너덜너덜해진 머리와 피로 더럽혀진 시체만이 남게 되었다.
몇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아까보단 빛이 많이 들어온다. 셔터가 올려져 야외로부터 빛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주변은 아까와는 다르게 일반인 출입금지 로프가 쳐져 있다. 그 로프 안에서는 경찰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시체와 주변의 조사를 하고 있었다. 그 중 한 경찰이 시체에 다가간다. 시체를 가린 흰 천에는 피얼룩이 조금 묻어있다. 시체를 덮은 천을 까뒤집어 몇초쯤 살펴 보더니 거친 사투리를 내뱉는다.
"또가? 이 아새끼도 고마 대갈빡이 날라가 있네?"
몇번이고 같은 형태의 시체를 보는듯한 말. 뒤에서 후배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다가온다.
"선배, 천 덮으셔. 이물질 들어가면 책임 질거요?"
"아 거 아새끼 걱정도 팔자다. 은냐, 덮으면 될꺼 아이가."
후배의 말에 툴툴대며 남자는 천을 다시 원상태로 돌린다. 뒤를 돌아 후배의 얼굴을 보며 말을 건다.
"또 그거 뿐이가?"
"보시다시피, 저 벽에 새겨진 것 외에는 없었수다."
후배는 고개를 돌려 뒤돌아본다. 선배의 시야도 뒤로 따라간다. 시체 근처의 벽에 그려진 피의 문양. 얼핏 보기에는 단순한 동그라미의 배열이지만, 단순하기에 무슨 마크인지 알수 없다.
"혈액도 죽은 새끼랑 일치하나?"
"그런거 같수."
"저 문양이 뭔지 니는 알겠나?"
"알면 벌써 진척이 나갔겠소. 딴건 없나 더 살펴봅시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후배는 문양을 다시 살펴본다. 부등식 몇개를 그린거 같기도 하고, 그냥 동그라미를 점점이 찍은 것 같기도 하다. 그 문양은 어떤 것을 상징하고 있다는 것만을 후배는 느꼈다.
하지만 이것이 상징하는 것을 알게 되는 자는 평범한 세계에서 살수 없는 것도 감이 온다.
자신은 형사라는 것을 제외하면 평범한 인간이다. 이런 일은 '그 쪽 세계 인간들' 만이 해결할 수 있다.
후배 형사는 생각을 거기까지로 접어, 투덜대는 선배를 달래며 더 나오지도 않는 증거품을 찾는 척 시체 주변을 대충 돌아다니다, 모두가 철수할때 섞여 돌아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