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5/14 21:34 | 창작/글

세계를 수호하려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남자인 치스터를 호위하기 위해 따라다니다 보면 특이한 것들을 많이 발견하곤 한다. 그게 뭐냐는 질문에 굳이 설명하자면 내 기준으로 신기하게 생긴 생물 혹은 자연의 모습이나 색다른 양식의 문화를 가진 지적 생명체들을 가리킨다.

감정이 거의 없어져 목적을 제외한 모든 것에 무감각하다고 진단한 치스터에게 이것만은 내가 당신을 따라다니면서 느끼는 얼마 안 되는 즐거움 중 하나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는 조금 쓴웃음을 지으며 '괜찮은데. 그 느낌을 잊지 마. 되려 즐기도록 해.'라고 답해줬고, 나도 이 즐거움을 잊을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또 내게 찾아왔다. 죽은 뒤의 모든 영혼이 모여드는 곳, 우리 인간들이 사후 세계라고 부를 수 있는 곳에서 그가 점검할 게 있다며 그곳으로의 공간 문을 열어 갈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곳에 대해선 그의 서재에 있는 책에서 읽어서 조금 알지만,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게 나은 걸 아는 나로선 기대감을 품는다.

"여기서 적대적인 놈들이라고는 다 영혼들뿐이지만 난 영혼을 어느 정도 지배 가능하니까 아마 내 근처로는 다가오지 않고 물러설 거야. 하지만, 넌 아니지. 설마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나 육신에 굶주린 망령들에 빙의 될지도 모르니까 내 근처에서 떨어지지 마."

들어오기 전에 그에게서 그런 당부를 들어 곁에 떨어지지 않은 채로 공간 문을 들어간다. 문 속의 뒤틀린 공간에서 발하는 빛이 내 몸을 덮나 싶더니 이내 그 기운이 사라져 문을 통과했음을 느꼈다. 문을 통과하여 나오자 검은 하늘과 짙은 색의 땅, 그리고 그런 칙칙한 곳을 아름답게 물들인 형형색색의 구체들이 눈에 들어왔다. 과연 그의 말대로 몇몇 불길한 색의 구체들이 나를 발견하곤 다가오나 싶더니, 앞에 있던 그의 느낌에 이내 경계해 뒤로 재빠르게 물러서 더는 다가오지 않고 우리가 지나갈 때까지 움직이질 않는다. 그 모습에 치스터는 뭔가 장난기가 생긴 듯 물러선 영혼 하나에 손을 뻗는다. 그 모습에 눈치를 채 도망치려 했으나 잡혀버리는 게 더 빨랐던 불쌍한 영혼에 조용히 애도를 표했다. 쥔 손의 반대편 빈손으로 영혼을 툭 치자 때린 손 중지에 청록색 마력 실이 가늘게 생겨 영혼과 손가락을 연결했다.

"치스터표 특제 망령 통통볼, 지금 막 완성. 낄낄."

손가락을 위아래로 살짝살짝 튕겨 영혼을 가지고 논다. 튕겨 올라와 손에 닿는 영혼의 감촉이 좋은 듯 손을 놀리는 것을 멈추지 않으며 뒤를 돌아봐 내게 물어본다. 

"너도 만들어 줄까?"

"사양하겠습니다."

"그럼 나만 즐겁게 가지고 놀도록 하지."

내가 저걸 가지고 노는 것보다 이 주변을 둘러보는 게 더 즐겁다는 것은 그도 알고 있어 재차 권유하지 않는다. 그가 목적지까지 걷는 동안 하늘을 둘러보며 그를 따라간다. 셀 수 없는 수많은 색의 영혼들이 하늘에 자리를 잡은 채로 빛을 자랑스럽게 내뿜는 것이 보인다. 자리잡힌 모양새가 마치 은하수처럼 자리를 잡아 점점 중심으로 갈수록 몰려들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선을 아래로 내려 앞을 보자 그가 걷던 방향이 그 중심 쪽임도 이내 깨닫는다.

"저 중심 쪽으로 가는 겁니까?"

여전히 그는 영혼을 가지고 놀면서 내게 돌아보며 이야기해준다.

"그래. 저기로 가는 게 맞아. 그리고 이야기하나 해 주지. 저 중심을 잘 봐. 빛 때문에 몰려 있는 것처럼 보이지? 저건 몰린 게 아니라 영혼들이 그대로 합해진 거야. 가까이 가서 보면 모두가 붙어 있지. 죽은 생명의 혼이 합해져 또 다른 생명의 별을 만드는 에너지를 창조하는 거지. 이 에너지가 우주 밖으로 나가 네가 살던 곳처럼 생명이 사는 별을 만든단다."

"죽은 영혼들이 모여 생명의 별을 만든다고요?"

"그래. 순수한 영혼일수록 저기에 가서 합치려 하고, 반대의 영혼일수록 중심에서 벗어나 있지. 내 손의 이놈처럼 말이야."

아까부터 영혼이 계속 그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하던 게 보였지만 지금 그의 말에 자세히 본다. 마치 어린 아이가 잠자리 꼬리에 실을 묶어 풀어준 것처럼 그의 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리저리 공중을 헤매고 있다. 단순히 갖고 놀음 당하는 것이 싫어 도망가려는 건가 했는데 그런 건 아니었나보다.

"순수한 영혼이 커질수록 이 녀석들은 그걸 거부하고 가까이 가려 하지 않아. 그뿐만 아니라 자신과 같은 깨끗하지 영혼일지라도 놈들은 거부해. 이기적이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전생의 흔적이지."

말을 마친 그는 마력의 연결을 풀어 실을 끊는다. 갑자기 줄이 끊긴 것과 탈출하려 힘을 쏟던 것이 합쳐져 재빠르게 퓽 하고 뒤쪽으로 날아가는 것을 눈으로 좇아 고개를 왼쪽으로 돌린다. 굉장한 속도로 땅에 처박히기 전에 겨우 멈추는 데에 성공한 영혼은 이내 멀리 날아가 버린다. 그걸 나와 그는 한참 동안 보고 있었다.

"올라가자."

평지는 이윽고 언덕으로 경사가 변해 중심 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를 따라 30분 정도 걸어가자 이윽고 중심에 도착했다. 도착하자 그는 이 거대한 영혼의 주변에 있는 붙지 않고 떨어져 있는 몇 영혼들을 따로 모아내기 시작했다. 그를 따라 나도 작업을 도우면서 문득 든 생각에 질문했다.

"이것들은 합치지 않으려 하면서도 이쪽에서 떨어질 생각은 하지 않네요. 아까랑은 다른 영혼들인가요?"

그는 작업하는 손을 멈추지 않으며 내 질문에 지시로 답해주었다.

"이 녀석 중 하나를 골라 손가락으로 찔러봐."

그의 말을 듣고 영혼 하나를 손가락으로 쿡 찔러보자 한번 꿈틀대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잠잠해졌다. 몇 번을 찔러봐도 똑같은 반응만을 하는 것을 그는 슥 보더니 시선 때문에 잠시 느려진 작업을 재개하며 말해주었다.

"이 녀석들은 꿈을 꾸고 있는 영혼들이야."

"꿈을 꾸고 있는 영혼들?"

"그래. 죽기 직전에 꿈을 꾸던 영혼들이지. 죽어 혼만이 남으면서도 이들은 꿈을 꾸고 있어. 어떤 의미로 가장 축복받은 녀석들이야. 꿈은 자신이 무의식을 표현하는 또 다른 세상이잖아? 죽어서 자신이 무의식중에 표해오던 세상에서 혼이 없어질 때까지 살게 되었으니 얼마나 축복이냐. 하지만, 이들은 자신만의 세계에 들어온 것을 그저 환생이라고 믿고 있거나 혹은 원래 살던 곳에서 다른 세상에 떨어졌다고 생각해. 좀 문제 있는 녀석들은 자기가 어떻게 꿈의 세상에서 살게 되었는지도 생각조차 안하지만."

잠자는 영혼을 쥐어 본다. 저 밝은 백색 구체들과는 다른 색깔이었지만 저처럼 강하게 빛을 발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영혼들의 빛을 느낌으로 표현하자면 부드러운 빛이라고 설명할수 있었다.

"이들의 밝기는 보기만 해도 푸근한 느낌이 드는데요."

"푸근한 느낌의 영혼이라…. 그거 좋은 설명인데.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드디어 찾았으니 영혼에 편안함을 찾아 빛을 부드럽게 뿜어내는 게 아닐까."

떨어진 영혼의 분리도 나와 그가 작업함으로써 어느새 끝나가고 있었다. 영혼이 모두 한곳에 모인다.

"하지만…."

그가 입을 열었다. 영혼을 보는 눈빛과 말투는 안쓰러운 동정을 향한 느낌이었다.

"이들은 그 세계가 꿈임을 자각하는 순간 누구보다 허무함을 느낄 거야. 그리고 누구보다 비참한 영혼들이 되겠지."

"……."

"살아생전 행복했던 녀석들도 있겠지만, 삶에서 행복을 찾지 못하고 꿈에서나마 정신적으로 만족할 수 있었던 녀석들이 더 많아. 드디어 행복을 찾았는가 싶더니 그 행복은 꿈이었고, 자신은 이미 죽어 이 황량한 세계에 영혼만이 있을 뿐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더는 맛볼 수 없는 허무함과 비참함을 느끼겠지. 더욱이, 이곳엔 자신을 동정해줄 녀석도 존재하지 않으니 비참함은 더욱 커져. 그래. 저길 봐."

그가 시선을 돌려 아까 도망쳤던 영혼이 갔던 곳으로 향한다. 그의 행동에 나도 그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꿈에서 깨어난 녀석들은, 좀 전의 녀석처럼 불길한 영혼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아. 현실도피라고 말하는 게 딱 맞겠지. 다시는 그런 부드러운 빛을 내지도 못하고 그들에게 속해버려."

영혼이 도망친 쪽을 둘러본다. 저 불길한 색을 띄는 빛 무리 중에 그런 애들이 있다는 걸 생각한다.

"이런 녀석들이 여기에 계속 있다간 앞으로 만들어질 별에 무슨 치명적인 일을 줄지 몰라. 그래서 우리는 이 녀석들을 떼러 온 거야."

말을 마친 그는 영혼 전체에 마력 실을 그물처럼 엮어 들어 올렸다. 아까처럼 저항하지도 않고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는 영혼들. 그들은 꿈에 너무 빠져 실제의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는 걸까.

"가자. 이 녀석들은 중간쯤에 내버려두면 되니까. 더 이상은 여기에 볼 일 없어."

손에서 이어진 실이 그의 움직임에 따라 공중에 떠 있는 영혼들을 양 떼처럼 몰고 간다. 그런 생각을 하자 그가 마치 목동처럼 보여 살짝 웃음이 지어져 이것도 몇 안 되는 나의 감정임을 눈치 챘다. 그를 따라가기 전 다시 한번 돌아봐 거대한 빛을 보기로 했다. 정면으로 보면 눈이 멀 정도는 아니지만 강한 빛을 발하는 영혼의 무리가 여전히 그 빛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런 무리에 속하는 것을 거부하고 구석으로 떨어진 영혼의 무리가 떠올랐고, 그 둘의 사이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일순간의 행복을 느끼는 영혼의 무리가 떠올랐다.

내가 죽게 된다면, 이 셋 중 과연 어디에 속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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